최근 삼성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인재경영’을 표방한 외부 인사 수혈이 잦다 보니 공채를 통해 회사에 입사한 삼성맨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서다. 특히 외부 인사 중 상당수가 부서장이나 임원자리를 꿰차면서 삼성맨들은 오랜 기간 회사에 몸담으며 헌신할 필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 내 젊은 직원들의 퇴사 러시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통 삼성맨’ 입신양명은 옛 말, ‘굴러온 돌’ 더 대접하는 뉴삼성 인사 기조에 삼성맨 허탈
2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카드는 이날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를 열고 김이태 삼성벤처투자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김 내정자는 1966년생으로 마산 경상고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36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에 입문한 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과 대통령 비서실 서기관 등을 역임했다. 2016년 공직을 떠나 삼성전자 IR 담당 상무 자리를 꿰찼다.
고위 공직자 출신의 삼성행(行)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는 약 7년여 만에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를 부사장 자리에 앉혔다. 당시 삼성전자에 합류한 이병원 IR팀 부사장은 과거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정책조정국에서 근무한 이력을 지녔다. 최근 삼성전자 재경팀으로 영입된 강연호 상무 역시 관세청 기획재정담당관을 역임한 공무원 출신 인사다.
삼성그룹의 잦은 외부 인사 수혈 행보는 고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삼성그룹은 철저한 성과주의에 기반한 내부 인재 성장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로 유명했다. 지금처럼 이미 완성된 인재를 영입하기 보단 인재가 될 싹을 발굴해 진짜 인재로 키우는 식이었다.
덕분에 당시 삼성그룹 내부에선 ‘일한 만큼 많은 성과를 내면 확실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직원 모두가 그 분위기에 동참했고 재계 전반에 ‘삼성 직원은 능력이 좋다’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당시 직원들 사이에선 ‘내 몸에 파란 피가 흐른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직원들의 애사심도 남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내부의 분위기 역시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이재용 회장이 그룹 총수를 맡은 이후 외부 출신 인사가 고위직을 꿰차는 사례가 끊이지 않자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과거 소속감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던 삼성그룹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반응이 우세한 상황이다. 특히 소속감과 자부심 상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해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삼성그룹 내에선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더 나은 기회 찾아 과감하게 이직을 결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 출신 인사가 대표이사로 발탁된 삼성카드의 지난해 이직률은 10.9%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높은 이직률을 기록했다. 직원 10명 중 1명은 회사를 떠났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10.6%) ▲삼성SDI(9.9%) 등의 이직률 역시 전부 10% 안팎에 달했다. 특히 삼성그룹의 미래 동력인 20대 직원의 퇴사 러시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직원 중 29세 이하 직원의 비율은 약 27%로 2010년(55.7%)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과거 삼성전자에 다녔던 직장인 이윤수 씨(31·남·가명)는 “삼성고시로 불릴 정도로 어렵다고 소문난 공채를 통과해 약 2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부서의 팀장급들은 계속 임원 진급에 실패하는 반면 외부에서 새로운 임원이 계속 채워지는 모습을 보고 마치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며 “결국 고민 끝에 SKT로 이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도 삼성 출신이라 평생직장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막상 다녀보니 근속연수 보다는 그때그때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를 나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원이라는 직위는 정말 자리 하나하나가 귀한 자리인데 수십 년간 근무한 내부직원이 아닌 외부 인사로 자리를 채우는 것은 내부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촉발시킬 수 있다”며 “특히 관료출신 인사를 대거 임명하는 것은 낙하산 인사로 인식 될 수도 있어 조직 내 갈등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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