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병규 우리은행장의 낙마로 우리금융그룹(이하 우리금융) 리더십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부쩍 커진 가운데 역대 은행장들의 재임 기간 또한 우리금융지주 회장보다 현저하게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각종 대내·외 악재 속에서도 연임에 성공하며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킨 반면 은행장들은 사소한 문제만으로도 연임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통상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지주 회장의 입김이 강력하게 적용될 정도로 금융그룹 지배구조가 사실상 ‘1인 절대권력’ 체제나 다름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병규 행장을 비롯한 역대 우리은행장에 대한 처사는 사실상 ‘역차별’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1인 절대 권력인데 책임은 2인자가…조병규 낙마로 떠오른 우리은행장 잔혹사
시중은행,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우리금융그룹 자회사 대표이사 추천위원회는 조병규 행장의 연임이 어렵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 행장은 현재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에 대한 불법 대출 혐의와 관련해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조 행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반면 아직까지 임종룡 회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우리금융 내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주 회장이 아닌 은행장이 책임을 짊어지고 은행을 떠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 행장 전임인 이원덕 전 행장은 2022년 4월 재임 기간 중 700억원 규모의 횡령사건이 발생하자 임기를 10개월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2020년 은행장에 선임된 권광석 전 행장 역시 3연임이 유력한 상황에서도 딱 2년만 하고 은행을 떠났다. 당시 그는 DLF(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라임 사태 등으로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를 잡으며 조직 안정화를 이끌었고 이후 2021년 시중은행 가운데 최대 순이익 성장률(74.3%)를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지만 3연임에 실패했다.
반면 지주 재출범 이후 초대 회장에 임명된 손 전 회장은 임기 내 연이어 터진 각종 금융사고에도 2019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무려 4년이나 그룹 회장 자리를 지켰다. 앞서 손 전 회장은 2019년 재임 당시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DLF(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 불완전 판매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지만 징계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소송전을 벌여 2020년 3월 연임에 성공했다. 또 2022년에는 70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해 금융당국으로부터 또다시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금융권 안팎에선 이번 조 회장의 낙마로 ‘회장은 살고 은행장은 죽는’ 우리금융 특유의 리더십 문화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 회장이 공개적으로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부터 조 행장이 딱 1년 임기만 채우고 물러나는 상황까지 과거의 모습과 흡사하게 전개된다는 이유에서다. 임 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중 거취와 관련한 질문에 “지금은 조직의 안정과 내부 통제 강화에 집중할 때다”며 자진 사퇴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자회사 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내려놓겠다며 사태의 직접 해결 해결 의지도 피력했다. 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것은 임 회장이 자리를 지켜야 가능한 일이다.
다만, 현재 금융당국과 검찰은 손 전 회장 관련 비리 혐의에 대해 조 행장뿐만 아니라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또한 책임 소지가 명확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에도 “임 회장이 부당대출 사실을 보고받았다”는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역시 이번 사태가 사전에 은행장부터 지주회장까지 내부적으로 인지됐음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에 제때 보고되지 않은 점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앞서 지난해 임종룡 회장이 취임하면서 그룹 내부의 각종 사고를 반드시 고치겠다 단언했었는데 이후 행보를 보면 오히려 더 많은 금융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더구나 전직 회장이 개입된 부당대출 건 등과 관련해 은행장이 혼자 짊어지고 묵인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임종룡 회장도 그룹 관리 부실에 따른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대규모 금융사고의 경우 은행의 책임도 있지만 그룹 전체 내부통제 시스템을 관리·감독하는 지주사의 책임이 더욱 크다”며 “특히 국내 금융그룹들은 지주 회장이 사실상 행장 선임을 주도하는 만큼 금융사고가 발생한 은행의 최고경영자와 함께 지주사 회장에게도 그 책임을 함께 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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