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삼성전자에 가장 가혹한 해가 될 전망이다.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인한 실적 부진과 더불어 경쟁자들의 견제 수위 역시 정점을 향하는 모습이다. 일례로 올해 미국에선 삼성전자에 대한 경쟁기업의 특허 침해 소송이 부쩍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라 불리는 특허관리회사(Non Practicing Entity·NPE)들이 삼성전자를 표적 삼았다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특허관리회사’는 생산 활동을 하지는 않은 채 확보한 특허를 가지고 소송을 진행해 수익을 얻는 기업들을 뜻한다. 이들은 보유한 특허권을 실제 사업에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문제 제기의 도구로만 활용한다는 점에서 ‘특허 괴물’이라 불린다. 심지어 승패조차 불확실한 소송 제기로 기업의 발목을 잡아 합의금을 챙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앞서 한 특허관리회사는 삼성전자 폴더블폰 디스플레이가 두 개라는 이유로 특허 침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도 있다.
3주간 특허침해 소장만 8건 받은 삼성전자…합의금 노린 ‘꾼’의 소행 가능성 높아
지난 16일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 삼성전자에 대한 소장이 접수됐다. 원고는 ‘엔셀레온(Encelion LLC.)’이라는 특허관리 전문 법인이었다. 원고 측은 삼성전자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펄스센서(혈압측정 센서)’와 ‘인체 수분 측정 방법 및 장치’를 침해했다며 법원에 손해배상을 소송을 청구했다. 소장엔 구체적인 증거와 침해 여부는 기재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특허 침해 관련 내용으로 소송을 당한 것은 이달에만 무려 8건이나 된다. 한 주에 2~3건의 특허 소송을 당한 셈이다. 미국 법원 공시(PACER)에 따르면 이달 삼성전자를 소송한 기업은 △엔셀레온 △클라우드 컨트롤스(Cloud Controls LLC) △웨이브 센스(Wave Sense LLC) △트랜스페런스(Transparence LLC) △젠지스컴 홀딩스 (GENGHISCOMM Holdings LLC) △넷모멘텀(NetMomentum LLC) △폴라리스 파워LED(Polaris PowerLED Technologies, LLC) △이베컨(e-Beacon LLC) 등이었다. 이 중 클라우드사는 올해만 삼성전자에 무려 5건이나 되는 특허 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현지에서는 이들 기업을 전부 특허관리 전문 법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련의 공통점 때문이다. 우선 기업에 대한 공개된 정보가 적은 편이다. 당장 대표 홈페이지조차 개설돼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고 대표나 업체 정보 역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허 관련 소송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일반 대중에게 기업 관련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또 다른 공통점은 소장 대부분을 텍사스 동·서부지방법원(Court for the Eastern·Western District of Texas)에 제출했다는 점이다. 미국 법조계에 따르면 해당 법원은 특허권자에 친화적인 판결을 잘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당 지역 배심원들 또한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유독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허 전문 법인들이 승소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미국 유니파이드 페이턴트(Unified Patent)가 발표한 ‘2023년 특허분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방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특허소송의 85%(522건), 연방 텍사스 서부지방법원에서 제기된 특허소송의 90%(467건)가 특허관리회사들에 의한 소송이었다. 이달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관련 소송을 제기한 기업 전체가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미국 현지의 한 법조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특허 관련 소송은 대부분 특허관리법인이 주도한 것이 많다”며 “최근 삼성전자에 손해배상 소송을 넣는 기업들 역시 하나 같이 특허관리법인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 기업은 미국 배심원 판결 시스템을 믿고 일부러 승소 가능성이 높은 법원을 골라 무차별 소송을 펼쳐 합의금을 유도하는 일종의 ‘합법적인 협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기업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강조했다.
갈수록 거세지는 특허 괴물의 협박성 공격…한국선 국민기업, 미국선 ‘만만한 먹이감’
문제는 최근 삼성전자를 향한 특허 침해 관련 소송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르데스크가 집계한 올해 미국에서 삼성전자를 타깃으로 한 특허 침해 관련 손해배상 소송 제기 건수만 65건에 달한다. 월별로는 △1월 4건 △2월 8건 △3월 4건 △4월 5건 △5월 3건 △6월 8건 △7월 9건 △8월 9건 △9월 3건 △10월 4건 △11월 8건 등이다. 지난해 동기(41건) 대비 약 50% 가량 증가한 수치다.
삼성전자 타깃 특허 관련 소송 건수는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올해 특허 관련 소송에 휩싸인 사례는 고작 2번에 불과하다. LG전자 역시 17건에 그쳤다. 경쟁사들의 특허 관련 소송 역시 삼성전자에 크게 못 미쳤다. 올해 삼성전자보다 시가총액이 높고 미국 내 영향력이 높은 애플의 특허 관련 소송은 삼성전자의 절반가량인 35건에 불과했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특허 괴물들의 주 타깃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제품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일반가전, 스마트폰 등 거의 모든 전자 제품을 취급한다. 특허 괴물 입장에서는 공격할 곳이 넘치는 사냥감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 안팎에서는 특허 괴물으로부터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조치가 시급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특허분쟁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국내 기술 시장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다”며 “기업이 아무리 노력해도 수많은 특허 괴물들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정부 주도의 기구를 수립해 국내 기업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특허 괴물들에 맞서 선제적으로 특허를 신청하는 맞불 작전을 펼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특허권을 가진 기업 순위 1위에 올라 있으며 보유한 특허권 개수만 해도 9만3327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강경한 대응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는 국내 최대 수출 기업으로 규모가 큰 만큼 이를 노리는 특허 기업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보다 강경한 대응을 통해 이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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