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으로 국내 산업계가 취업비자 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 트럼프 집권 1기 시절 전문가 파견을 위한 미국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현지에 국내 전문가들을 공급하지 못해 미국 사업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에 대한 투자가 훨씬 늘어난 상황에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면 과거보다 타격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재선 이후 재계는 비자 문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미국에 수십조원 이상을 투자한 삼성·SK·현대차·LG·한화 등 대기업들이 미국 비자 문제에 예민한 것으로 나타났다. 첨단 설비를 사용하는 대기업들의 경우 이를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선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외 파견된 고숙련 전문가들은 현지에 노하우를 전수하고 사업 인력은 본사와의 원활한 소통 및 관리를 주로 담당하게 된다. 미국 비자로 현지 파견이 줄어들면 현장은 물론이고 국내 본사와의 소통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는 1기 집권 때보다 강한 자국중심주의, 반(反)이민 정책 입장을 표출하고 있어 비자관련 문제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선거기간 동안 트럼프가 자국민 일자리 보호를 위해 해외 인력을 최소화할 것이라 여러 번 공언했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 관계자는 “트럼프 1기 시절에는 추방에 이민법이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2기에서는 내보내는 것보다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에 집중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1기 시절인 2016~2020년 미국 취업비자 H-1B 거절률은 오바마·바이든 행정부의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H-1B 비자는 미국 내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의 지원(Sponsorship)을 통해 신청할 수 있는 단기취업비자 중 하나다. 해당 비자를 취득해야만 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데, 미국 현지에 진출한 대기업 입장에선 인력 관리와 경영을 위해선 필수다.
한국무역협회와 미국정책재단(NFAP)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 1기 H-1B 거절률은 17.8%였다. 이는 100건 가운데 17건가량의 비자발급이 거부됐다는 것이다. 거절률이 가장 높았던 2018년에는 무려 24%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오바마 정부 1기 8.8% △오바마 정부 2기 7.8% △바이든 정부 3.2%보다 최대 6배가량 높은 수치다. 미국에 대대적 투자를 진행한 국내 기업들이 비자 문제에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전문직 비자 발급이 어려워지면 미국에 투자하는 국내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비자 문제가 국내 대기업 현지 사업에 어떤 악영향이 발생하는지는 이미 트럼프 1기때 증명됐다. 당시 현지에 전문인력을 공급하지 못한 국내 기업들은 크고 작은 관리 문제에 시달렸다. 그 결과 미 규제 당국에 위반 행위 적발 건수까지 증가하며 골머리를 앓았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우 트럼프 1기 시절 현지 인력 파견이 줄어듦과 동시에 규제 당국의 적발 건수는 늘어났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트럼프 1기 시기 삼성전자 미국 H-1B 비자 승인 건수는 494건, 바이든 시기는 582건으로 100건가량 차이가 난다. 미국 직업안전 관리청 및 환경보호청 등 규제 당국이 적발한 위반 건수는 트럼프 시기 9건, 바이든 3건이다. 파견인원이 증가하자 위반 건수가 줄어든 것이다.
LG전자는 트럼프 시기 고작 36개 비자를 승인받은 반면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고 64건의 비자를 발급 받았다. 적발된 위반 사안 또한 바이든 시기는 고작 2건이지만 트럼프 때는 6건으로 3배가량 크게 차이 났다. LG의 경우 트럼프 시기 근로자 안전 위반 적발이 크게 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또한 트럼프 1기 시절 취업비자로 인력파견이 줄어들었다. 현대차 H-1B 비자 승인 건수는 트럼프 시절 52건, 바이든 시기 73건이다. 위반 적발 건수는 트럼프 시기 15건, 바이든 시기 9건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진출한 대다수의 기업들이 현지 사업을 관리할 고급인력들을 파견하지 못한 것이 관리 부실 문제를 겪은 것이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재선으로 똑같은 일이 다시 한번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국내 기업들이 현지에 필요한 인력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사업이 불안정했고 그로 인해 분위기 또한 어수선했다”며 “이는 결국 관리 부실 문제로 이어졌고 이번 트럼프 2기에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차원에서 국가적 문제인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국가적 차원에서 외교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협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발맞춰 신임 의회가 개원해 새로운 의제를 다룰 때 한국 동반자법을 조기에 재발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동반자법은 전문 교육을 받은 한국 국적 기술자를 대상으로 전문직 취업비자(E-4)를 연간 최대 1만5000개 발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 기업은 기술자를 미국에 파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존 1년에서 1개월 이하로 단축시킬 수 있다. 또 추가된 비자만큼 인력을 충분히 파견할 수 있게 된다.
최성률 카이스트(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다수 협력사까지 고려한다면 비자 문제 해결은 한국 경제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며 “각 나라 별로 비자 할당량을 정하는 문제는 미국 정부가 결정하기 때문에 정부가 앞장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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