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소극 행보의 반전…미국 미련 없이 친환경 유럽 ‘가벼운 발길’
삼성SDI 소극 행보의 반전…미국 미련 없이 친환경 유럽 ‘가벼운 발길’
[사진=삼성SDI 유럽]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행보에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정권 인수위원회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세부지침 폐지 논의에 돌입함에 따라 배터리 수요 감소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다.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현상)’으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과 직결된 보조금 지원까지 사라질 경우 전기차 업체는 물론 배터리 업체들까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부 배터리 업체들은 일찌감치 활로 모색에 나섰다. 그 중 상당수 배터리 업체들이 선택한 시장은 유럽이었다. 친환경 규제와 정책이 가장 선진화돼 있는 지역으로 전기차 전망 또한 가장 밝은 시장으로 평가돼왔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 중 한 곳인 삼성SDI 역시 대세의 흐름에 따랐다. 유럽 법인(Samsung SDI.Europe GmbH)을 이끌고 있는 이종석 대표이사(삼성SDI 상무) 등판 이후 유럽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트럼프 리스크’ 현실화 된 배터리 업계…유럽의회 로비 포문 연 삼성SDI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친환경 에너지보다 화석연료를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노스다코타주의 한 정유 공장을 방문한 트럼프  당선인. [사진=백악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미국 내 전기차 산업의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주요 배터리 업체들은 일제히 시선을 유럽으로 돌리고 있다. 유럽의회의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확정 등 유럽은 미국과 달리 2차전지에 우호적인 정책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다 일찌감치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그동안 글로벌 배터리 업체 중 상당수가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물밑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 중 한 곳인 삼성SDI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SDI는 이종석 유럽 법인장 취임 후부터 유럽의회를 대상으로 로비 활동을 전개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 로비는 합법으로 기업들은 유리한 법안을 이끌어내거나 정계에 회사 입장을 전달하는 비즈니스 수단으로 사용한다. EU의회에 보고된 투명성보고서에 따르면 삼성SDI 지난 8월 로비 등록부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첫 로비 금액은 약 20만유로(한화 약 3억원)였다.

 

하노버 커뮤니케이션과 계약 후 총 3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했다. 처음 로비 개시 시점에 통상 1명의 로비스트만을 고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나름 공격적인 투자로 평가된다. 하노버 커뮤니케이션은 애플, 골드만삭스, 인스타그램, 맥도날드, 니산 등 글로벌 대기업을 고객으로 둔 유럽 지역의 유명 로비 업무 대행사다.

 

▲ 삼성SDI는 유럽의회를 대상으로 대관활동을 시작했다. 사진은 삼성SDI 유럽 공장 조경도. [사진=삼성SDI]

 

삼성SDI의 주요 로비 분야는 △그린 딜 및 지속 가능성 프레임 워크 △배터리 및 폐배터리 규정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Co2배출 규정 △유로 7(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등이었다. CBAM은 생산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에 따라 관세를 내는 제도다. 유로7은 자동차 배기가스에 포함된 오염물질의 상한치를 정하는 규제다. 두 정책 모두 시행 이전 단계로 유로7은 내년, CBAM은 2026년 각각 시행될 예정이다. 이들 정책 모두 전기차 산업에 상당한 호재로 평가되고 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가 당선된 이상 임기 동안 국내 배터리 업계가 미국에서 성장 동력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며 “그나마 삼성SDI는 다른 기업들에 비해 미국 투자 규모가 적어 타격도 적고 유럽 시장 공략도 유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사실 지금 상황에선 유럽 시장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하고 트럼프 임기가 끝난 뒤 미국에 진출하는 선택지가 가장 효율적이면서 리스크가 적은 전략이다”고 부연했다.

 

생산라인 확장, 공장 건립 등 유럽 투자 늘리는 삼성SDI…한층 커진 ‘이종석 존재감’

 

앞서 삼성SDI는 미국 공략 과정에서 경쟁사에 비해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3분기 기준 AMPC 보조금 규모만 보더라도 LG에너지솔루션 4650억원, SK온 608억원 등인 반면 삼성SDI는 103억원에 불과했다. 보조금 규모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설비 투자 규모도 적다는 방증이다.

 

▲ 삼성SDI는 유럽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최근에는 유럽 생산라인 확장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해 독일 국제모터쇼에 참여한 삼성SDI 부스. [사진=삼성SDI]

 

보수적인 행보 덕에 나름 효과도 있었다. 당장 투자 규모가 적다 보니 ‘전기차 캐즘’ 악재의 여파도 덜했다. 올해 3분기 기준 미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 업체 중 보조금을 제외한 순수 사업 흑자를 기록한 곳은 삼성SDI 뿐이었다. 이미 미국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은 경쟁사들과 달리 ‘트럼프 리스크’ 대비책 마련도 비교적 유연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삼성SDI는 유럽의회 로비 시작 시기를 전후해 유럽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덕분에 유럽 법인 수장인 이종석 대표의 존재감도 한층 커진 모습이다. 삼성SDI는 올해 유럽 신규 지역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헝가리 괴드의 배터리 생산라인 확장도 추진 중이다. 생산규모를 기존 30GWh(기가와트시) 정도에서 60GWh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지난해 말 기준 100GWh 수준이었던 글로벌 생산능력을 2026년 200GWh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 또한 트럼프 당선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판도가 유럽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미국 투자 규모가 적은 삼성SDI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이고 자국 우선주의자로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 업체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며 “유럽 시장은 미국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해도 충격을 완화시켜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SDI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에 비해 미국 투자 규모가 적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유럽 시장 공략의 장점이 될 수 있다”며 “유럽의회 로비활동부터 공장 증설까지 올해 들어 다양한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는데 일정 부분 성과를 낸다면 향후 트럼프 이후 시대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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