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의 신속한 사회적 재기를 지원하기 위해 시행된 개인채무자보호법이 실효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금융회사의 자체적인 채무조정 제도를 도입하고 과도한 연체이자 부담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기존엔 신용회복위원회(이하 신복위)나 법원 등이 채무조정을 주도했다면 이제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채무자와 채무조정을 해 신속한 재기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채권기관이 신복위의 채무조정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부실채권 관리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다보니 채무조정을 통한 장기 회수보다 단기적인 회수에 급급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채무자보호법 자율조정 한계…채무자·금융사 “체감 힘들다” 한목소리
개인채무자보호법의 주요 내용은 채권기관이 각 채무자의 상황에 맞춘 채무조정을 자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그동안 신복위나 법원의 주도로 이뤄졌던 채무조정을 벗어나 각 채권기관이 채무자의 요청을 검토하고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가 부과됐다. 그러나 많은 채권기관이 신복위의 획일적인 방식과 유사한 수준에서 채무조정을 운영하고 있어 실질적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채권기관들이 신복위 방식의 채무조정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채무 경감 효과가 크지 않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채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맞춤형 조정이나 높은 감면율을 제공하기보다, 신복위 수준의 제한적인 조정을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로 인해 채무자들은 개별 금융기관을 통해 실질적인 경제적 부담 경감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채무자보호법이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채권기관의 자율적 채무조정에 대한 소극적 태도가 지목된다. 채권기관 입장에서 채무조정을 통한 장기적 회수는 단기적인 매각보다 매력이 떨어진다. 채권 회수까지 장기간이 소요되고 관리 비용이 큰 자율적 채무조정보다는, 단기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이 선호되는 것이다.
채무조정으로 인한 회수율이 충분히 높지 않다는 점도 기관의 소극적 태도를 부추기고 있다. 채권기관이 신복위보다 높은 감면율을 적용하게 되면 채무자의 상환 부담은 줄어들지만, 기관의 회수율은 저하된다. 이로 인해 채권기관들은 자율적 조정보다는 신복위에 근거한 제한적인 채무조정을 고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개별 금융기관이 개인채무자보호법의 주요 대상인 다중채무자를 지원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다중채무자는 여러 금융기관에 채무가 분산돼 있어 개별 채권기관의 조정만으로는 실질적인 보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신복위가 다중채무자에 대한 포괄적인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보완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사별 맞춤형 채무조정 방안 마련돼야…신용회복·자산 건전성 실효성 확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개인채무자보호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채권기관들이 자율적이면서 차별화된 채무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별 채무자의 상황에 맞춘 유연한 채무조정 방식을 통해 원리금 감면율을 조정하거나, 상환 유예 기간을 늘리는 방식이 도입된다면 채무자들의 연체 부담을 효과적으로 경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마다 채무조정을 위한 차별화 방안이 마련된다면 채무자는 더 높은 감면율이나 장기 상환 계획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채권기관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채무자의 재정 상태에 맞춘 실질적인 회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선 금융당국의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각 채권기관이 자율적으로 채무조정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개별 금융기관이 다중채무자에게 실질적으로 채무조정을 제공할 수 있도록 신복위가 다중채무자에 대한 포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신복위가 채권기관과 협력해 채무 부담 경감 효과를 높이는 게 중요하단 것이다. 다중채무자는 여러 금융기관에 채무가 분산돼 있는 경우가 많아 개별 금융기관의 자율적 채무조정만으로는 실질적 경감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복위는 다중채무자 지원을 위해 각 금융기관과 채무조정 사례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채무조정 경험이 부족한 금융기관에는 교육을 제공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또 신복위가 실무 부담이 큰 사례들을 직접 관리함으로써 금융기관의 자율적 채무조정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이를 통해 다중채무자들이 각 금융기관에서 실질적인 채무 부담 완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 금융기관이 자율적 채무조정의 필요성과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관별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채무조정 방식을 시도하도록 지원해 금융기관이 자율적 채무조정을 통해 신용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 초기에는 실질적인 성과가 미흡할 수 있으나, 금융당국과 각 기관의 지속적인 개선 노력과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개인채무자 보호 효과가 기대된다”며 “법 시행 이후 채무자의 재정적 부담이 경감되고, 금융기관들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채무조정을 통한 신용 회복과 자산 건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개인채무자보호법이 금융 환경 내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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