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당국이 1순위 과제로 내세운 반부패·청렴금융 당부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 지역 수협 소속 직원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위직 임원이 직접 고객 자금을 횡령하는 등 범죄의 경중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에도 감봉 또는 견책·경고 등 ‘솜방망이’ 수준 처벌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수협의 임직원 비리가 노동진 현 회장 취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에서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각 지역 수협(단위 포함)의 관리·감독은 수협중앙회가 맡고 있다.
노동진 중앙회장 취임 후 비리 건수 50% 넘게 급증…고객 적금·공과금 횡령도 비일비재
지난해 3월 노동진 수협중앙회 회장 취임 이후 약 1년 반 동안 수협중앙회 감사에 적발된 비리 건수는 총 69건에 달한다. 임준택 전 회장 퇴임 1년 6개월 전 적발된 비리 건수(44건)에 비해 무려 56% 이상 높은 수준이다. 연도별로는 ▲2023년 30건(4월~12월) ▲2024년 39건(1월~9월) 등이었다.
적발된 비리는 고객 자금 횡령, 임직원 대출 심사 생략, 지인 적금 금리 과다적용 등 고객들에게 직접적으로 금전적 피해를 주거나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일례로 앞서 제주 한림 수협에서는 내부 직원 10명이 공모해 고객 적금 및 지로공과금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들은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고객 예·적금을 중도 해지해 돈을 가로챘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 10명 중 면직에 처해진 직원은 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직원은 감봉(8명), 경고(1명) 등은 경징계를 받았다.
충남 보령 수협에서는 내부 직원 7명이 무자원 선입금 거래를 통한 횡령 사실이 적발됐다. 무자원 선입금 거래란 실제 돈이 입금이 되지 않았는데도 전산으로만 입금으로 처리하고 나중에 실제 돈을 입금받는 행위를 말한다. 해당 직원들은 자신들의 타 은행 계좌에 돈을 이체한 것으로 처리하면서 실제 돈은 납입하지 않았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 7명 중 징계면직에 처해진 직원은 단 1명이었고 나머지는 감봉(3명), 견책(1명), 경고(2명) 등의 징계를 받았다.
경북 영덕군에 위치한 강구 수협에서는 자금 조달여부의 불확실성이 높아 대출 취급이 불가능한 기업에 대출을 허용한 직원 21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들 중 대다수는 3급 이상의 임원들이었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 21명 중 1명만 감봉 징계를 받았을 뿐 나머지는 견책(10명), 경고(10명) 등의 가벼운 징계만 받았다. 심지어 감봉 징계도 기간은 1개월에 불과했는데 이마저도 직원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견책으로 징계 수준이 완화됐다.
처벌 수위가 터무니없이 낮다보니 동일한 비리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지점도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경북 강구 수협에서는 지난해 12월 기업시설일반자금대출취급 부적격으로 10명이 내부 징계에 처해졌지만 올해 3월 같은 건으로 21명이 또 다시 징계를 받았다. 경인북부수협에서는 지난해 3월 주택담보대출 취급 소홀로 11명이 내부 징계에 처해진 뒤 약 2개월 만에 임직원 관련대출 심사 생략 건으로 10명이 다시 처벌을 받았다. 이 밖에 ▲제주 한림수협 ▲여수 수협 ▲경인북부수협 ▲서남해수어류양식수협 등에서도 같은 비리가 연거푸 터졌다.
전문가들은 지역 수협에서 각종 불법 행위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 수협중앙회장 선출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협은 농협과 마찬가지로 지역 조합장이 관리·감독 기관의 수장인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투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협중앙회장이 단위 조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금융권 안팎에선 비리의 최종 책임을 관리·감독의 책임을 맡고 있는 수협중앙회장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대 대표는 “수협은 농협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 조합장들이 관리·감독 총책임자인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구조로 현 중앙회장 역시 조합장 출신이기 때문에 내부통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비리행위가 발생한 지점들에서 또 다른 위법행위가 재차 발생하는 것은 내부 통제 부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고객들의 금융 신뢰성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내용과 관련해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비리가 발생한 지점에서 또 다시 비리 건수가 발생하는 것은 사건 발생 지점이 타 지점에 비해 사업규모가 큰 것에 기인한다”며 “개인의 일탈에 따른 비리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고 최근 들어 내부비리 문제가 커진 것은 노동진 회장 취임 이후 사건이 많이 드러났을 뿐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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