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터업계의 과도한 ‘팬덤 마케팅’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국내 음반 판매량이 1억장을 돌파하고 기획사의 매출 역시 급증했다. 과거처럼 CD나 테이프로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데도 실물 음반 판매량이 급증한 배경엔 팬심을 겨냥한 엔터업계의 지나친 상술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포토카드(포카)깡이 거론된다. 아이돌 가수 앨범엔 무작위 포토카드가 들어가 있는데, 원하는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여러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걸 뜻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판매처별로 앨범에 포함된 증정품을 달리해 팬들의 앨범 구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팬들이 특정 아이돌의 굿즈나 응모권 등을 얻기 위해선 다량의 앨범을 구매해야만 하는 셈이다.
음반업계에 따르면 국내 음반 판매량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9년까지만 해도 2509만장에 불과했던 연간 음반 판매량은 2021년 5709만장을 돌파한 이후 지난해엔 무려 1억1577만장을 기록할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그렸다. K팝 인기에 편승해 음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기획사의 마케팅이 점점 치밀해지고 고도화된 결과로 분석된다.
띠부띠부 씰 갖고 빵 버리듯…원하는 포토카드 위해 앨범 수십 개는 거리로
지난 2022년 포켓몬 빵 안에 있던 ‘띠부띠부 씰’이 유행했다. ‘띠부띠부 씰’을 모으는 사람들은 빵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빵은 버리고 씰만 모으던 현상이 벌어졌다. 최근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앨범 속에 랜덤으로 들어있는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팬들이 상당수다. 원하는 포토카드를 얻은 뒤에는 앨범 자체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느낀 팬들은 앨범을 방치하거나 길거리에 버리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백화점 인근 공원에서 보이그룹 세븐틴의 히트곡을 모은 앨범 ‘17 IS RIGHT HERE’가 수십 개의 종이 상자에 담긴 채 버려진 모습이 엑스(구 트위터)를 통해 공개되자 국내외 팬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새 앨범이 수십 개의 상자에 담긴 채로 버려진 이유는 ‘미공개 포토카드(미공포)’와 ‘사인회·팬미팅 응모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앨범의 종류뿐만 아니라 구매처가 어디냐에 따라 미공포의 형태와 지급 숫자가 랜덤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팬들은 좋아하는 멤버 사진을 얻기 위해 여러 구매처를 전전하며 앨범을 수십 장씩 구매하고 있다.
아이돌 팬 “얼마나 더 구매해야 당첨되나…기획사 상술 심각”
포토카드 뿐만 아니라 아이돌들 앨범에는 쇼케이스 참석권, 팬 사인회 참석권도 함께 포함돼 있다. 이러한 참석권은 아이돌과 팬들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업계 내에서는 중요한 마케팅 도구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팬들의 마음을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개의 음반을 구매할 경우 따라오는 평균 굿즈의 개수는 7.8개로 밝혀졌다. 케이팝 팬들이 밝힌 음반을 구매하는 이유(중복 응답 가능)는 음반 수집이 75.9%로 가장 많았으며, 굿즈 수집, 이벤트 응모가 52.7%, 25.4%로 뒤를 이었다.
음반보다 굿즈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동일한 음반을 4.1개 평균적으로 구매하며, 원하는 굿즈를 얻기 위해 많게는 90개까지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팬 사인회나 쇼케이스 등 아이돌과 팬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앨범 안에 있는 응모권에 당첨돼야 한다. 응모권은 보통 앨범 한 장에 하나씩 들어있는데,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 장보다는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때문에 많은 팬들이 평균적으로 6.7개의 앨범을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은선 씨(27·여)는 “최근 보이넥스트도어의 영상 팬 사인회와 컴백 쇼케이스 참석 응모권이 들어있는 앨범 10개를 구매했다”며 “둘 다 떨어졌는데 얼마나 더 많은 앨범을 사야 당첨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살 때는 당첨을 기대하면서 사지만 당첨이 되지 않았을 때는 ‘이번에도 소속사의 상술에 놀아났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최 씨는 “팬들 사이에서는 응모권 당첨 확률보다 12월에 열릴 콘서트 티켓팅을 노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도 팬들 사이에서는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도한 마케팅 전략이 장기적으로는 아이돌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팬덤 문화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보다 합리적이고 팬 친화적인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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