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콧대 높기로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 중 일부가 가격을 내리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불황에 실적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매출 타격이 크지 않은 럭셔리 브랜드는 여전히 고가 정책을 고수하는데 반해 매출이 급락한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가격 인하가 이뤄지면서 명품업계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12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국내 가격을 최근 20% 안팎으로 인하했다. 버버리의 인기 제품 중 하나인 나이트 백 미디엄 사이즈의 한국 가격은 기존 459만원에서 385만원으로 74만원 내려갔다. 같은 디자인의 스몰 사이즈 가격은 425만원에서 349만원으로 76만원 떨어졌다.
프랑스 명품업체 케어링그룹에서도 줄줄이 브랜드 가격을 인하했다. 생로랑은 국내 가격을 3~15%가량 인하했다. 생로랑 루루백 미디엄 사이즈는 439만원에서 389만원으로, 스몰 사이즈는 405만원에서 355만원으로 각각 낮췄다. 구찌도 일부 모델을 리뉴얼해 내놓으면서 값을 내렸다. 구찌 패들락 미디엄 숄더백 가격은 330만원에서 310만원으로 조정됐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 또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부 제품의 가격을 내린다. 페라가모는 오는 12일부터 국내 면세점 일부 아이웨어(안경·선글라스) 제품의 가격을 인하한다.
해당 브랜드들이 가격을 내린 이유는 실적 부진때문이다. 버버리 주가는 지난 1년간 70% 이상 떨어졌다. 올해만 놓고 봐도 57% 하락했다. 런던 증시 대표 지수인 FTSE100 기업 중 가장 부진한 성적을 보이며 지난 4일 퇴출당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2%나 감소했다.
케어링의 상황도 비슷하다. 케어링 주가는 반년 동안 40%가량 주저앉았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90억유로(약 13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8% 감소했다. 간판 브랜드인 구찌의 경우 올해 상반기 국내 매출이 24%나 감소했다. 페라가모 역시 2015년 시가총액 최고점을 찍은 이후 10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다만 모든 명품 브랜드들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인기 브랜드들인 불황에도 선방하며 고가 정책 기조를 지켜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르메스는 올해 상반기 국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다. 루이비통과 크리스챤 디올도 각각 3%, 2%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가 사태로 논란이 많았던 샤넬 매출은 1% 하락하며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출 방어에 성공한 명품 브랜드들은 오히려 가격을 인상하는 추세다. 루이비통과 샤넬, 에르메스 등은 모두 7월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루이비통은 올해 상반기에만 평균 11%가량 인상했고 에르메스는 가든파티 백과 신발 제품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올렸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명품간 양극화도 심화될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인하한 브랜드보다 오히려 인상한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았다. 어차피 사치품이고 가격을 조금 내린다고 해서 급격하게 싸지는 것도 아니라 한번 살 때 더 좋은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격 인하를 발표한 브랜드의 백화점 매장은 손님 하나 없이 썰렁한 상태였다. 반면 고가 정책을 고수하는 브랜드 매장에는 일부 손님들이 존재했다.
샤넬 매장을 찾은 이지선(가명) 씨는 “여행을 가려다가 차라리 좋은 백을 사자고 생각해서 백화점을 찾았다”며 “확실히 예전보다 손님이 없고 점원들도 훨씬 친절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격을 인하한 브랜드를 구매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는 “어차피 비싼 사치품을 사는데 몇 십만원 아껴서 후회할 바에 비싸도 내가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것 같다”고 밝혔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이미 코로나19 펜데믹 시절 가격이 너무 많이 오르고 경기 상황이 안 좋아 가격을 조금 내린다고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업계 가장 큰 손인 중국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사실상 실적 회복은 힘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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