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자산운용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에서 유독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ETF 시장점유율 3위 자리마저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다. 김영성 KB자산운용 대표가 올해 초 취임한 이후 줄곧 ETF 사업 강화를 외치며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선 것과 대비된다. KB자산운용의 상반기 실적이 제자리걸음할 때 라이벌인 신한자산운용은 호실적을 냈다는 점도 뼈아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일 기준 국내 ETF시장 규모는 무려 153조707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21조원에 그쳤던 걸 감안하면 불과 9개월 만에 시장 규모가 27% 넘게 커졌다. 고금리와 함께 시장변동성이 높아지자 개별주식에 투자하기보다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ETF에 투자자들이 몰렸다.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연초부터 앞다퉈 ETF 사업을 강화해왔다. KB자산운용 역시 예외는 아니다. 김영성 대표 역시 취임 이후 ETF 사업 강화에 주력했다. KB자산운용 ETF마케팅본부와 ETF운용본부를 ETF사업본부로 통합하고, 외부인력을 영입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공을 들인 것과 달리 KB자산운용은 ETF 시장에서 나홀로 역주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16개였던 KB자산운용의 ETF 펀드 개수는 10일 기준 111개로 줄어들었다. KB자산운용을 제외한 다른 주요 자산운용사가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ETF 펀드 수를 늘리고 있는 것과 정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기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80개였던 ETF펀드 수가 192개로 늘어났고 삼성자산운용은 179개에서 197개로, 한국투자신탁운용은 78개에서 86개, 신한자산운용은 36개에서 46개로 증가했다.
ETF 펀드 수가 줄었다는 건 해당 ETF가 상장폐지 됐다는 말이다. 주식처럼 ETF가 상장폐지되더라도 투자자가 모두 손실을 보는 건 아니지만, 평가손실 중인 상태에서 ETF가 상장폐지될 경우엔 투자자 의지와 무관하게 손실이 강제로 확정된다. 사실상 ETF 상장폐지는 투자자 신뢰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지목된다. ETF가 상장폐지됐단 건 결국 경쟁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았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상장일로부터 1년이 지난 ETF의 순자산이 50억원 미만일 때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이후 다음 반기 말까지 50억원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에 돌입한다. 운용사는 개선계획을 내거나 자진 상장폐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ETF를 가르켜 이른바 좀비 ETF라고 부른다.
김 대표 취임 이후 ETF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른바 좀비ETF 정리에 나섰다는 게 KB자산운용의 설명이다. 규모가 작은 ETF를 대거 정리해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KB자산운용은 ETF 시장에서 입지 축소를 피하지 못했다. 경쟁사에 시장점유율을 뺏기는 결과로 돌아왔다.
지난해 말 8.03% 였던 KB자산운용의 ETF 시장점유율은 10일 기준 7.76%로 감소한 반면 KB자산운용의 뒤를 이엉 4위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같은 기간 4.89%에서 7.11%로 증가했다. 3위와 4위 격차가 불과 0.65%p로 좁혀지면서 KB자산운용의 3위 자리마저 위태롭단 지적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경쟁사인 신한자산운용도 2.19%에서 2.96%로 증가했다.
라이벌 신한자산운용에 밀린 KB자산운용, ETF 경쟁력 강화 의문부호
KB자산운용은 리딩뱅크를 놓고 라이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지주계열사 신한자산운용에 상반기 실적마저 밀리면서 김 대표가 그간 ETF 사업 강화를 위해 선보인 경영행보에도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지주계열사인 신한자산운용의 ETF 시장점유율 자체만 놓고보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실적면에선 KB자산운용을 압도했다.
KB금융 및 신한금융 등에 따르면 KB자산운용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487억원이다. 같은 기간 신한자산운용은 804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까지만 해도 KB자산운용이 163억원으로 72억원을 기록한 신한자산운용에 앞섰지만 2분기 신한자산운용이 전년(121억원) 대비 505% 증가한 73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특히 KB자산운용은 타 자산운용사에 비해 지주사의 ETF 지원 규모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새어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분기 말 KB자산운용의 ETF 순자산총액은 11조7096억원인데 이 가운데 10.44%인 1조2226억원이 KB금융지주 계열사에서 나온 자금이다.
ETF 시장에서 KB자산운용을 턱 밑 추격하고 있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경우 같은 기간 순자산총액 10조1812억원 중 지주사 지원금액은 0.81%에 불과한 833억원이었다. 지주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도 오히려 4위인 한국투자신탁운용과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 KB자산운용의 ETF 사업 강화의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어린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업계 안팎에선 김 대표가 ETF 사업 강화를 하는 과정에서 단행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오히려 KB자산운용의 ETF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인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기존 ETF를 담당했던 핵심인력이 잇따라 퇴사하는 바람에 그나마 유지했던 KB자산운용의 ETF 경쟁력마저 약화했다는 지적이다.
KB자산운용에서도 이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최근 내부쇄신 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ETF 브랜드 이름을 ‘RISE’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RISE 슬로건은 ‘다가오는 내일, 떠오르는 투자(Rise Tomorrow)’다. 개인투자자의 건강한 연금 투자를 돕겠다는 포부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금융업계에선 KB자산운용이 ETF 펀드 수에 비해 부족한 인력이 ETF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KB자산운용이 운용하는 ETF펀드 수는 111개인데 총 펀드매니저는 64명이다. 펀드매니저 1인당 담당하는 펀드 수는 5개로 업계 평균과 비슷하지만 ETF펀드 수가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집중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ETF펀드 수가 46개인 신한자산운용에서 펀드매니저의 수는 54명이고, 65개의 ETF펀드를 운용하는 한화자산운용의 경우 펀드매니저가 49명이다. KB자산운용에 비해 운용하는 ETF펀드 수는 절반인데 펀드매니저 수는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KB자산운용에서 근무하는 펀드매니저 중 한 사람은 혼자서 무려 70개의 공모펀드를 관리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펀드매니저가 관리하는 펀드의 수보다 설정금액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면서도 “펀드매니저 한 명이 관리하는 펀드의 수가 많다고해서 수익률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아무래도 많은 수의 펀드를 관리하다보면 집중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