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전부터 ‘삐걱’…밸류업 발표 코 앞인데 기업·투자자 ‘시큰둥’
시작전부터 ‘삐걱’…밸류업 발표 코 앞인데 기업·투자자 ‘시큰둥’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가 또 다시 금융시장을 덮치면서 4일 코스피 지수 2600선이 붕괴됐다. 미국 증시가 오를 땐 찔끔 오르고, 내릴 땐 대폭 하락하는 모습이 되풀이되면서 한국 증시를 향한 투자자들의 시선엔 불신이 가득하다. 저평가된 한국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밸류업 계획도 우려를 사고 있긴 마찬가지다.

 

이달 내에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정작 자발적으로 밸류업 공시를 낸 상장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기업이 의욕적으로 기업가치 제고에 나선다 해도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데, 밸류업 지수 발표가 코 앞인데도 상장사의 참여는 저조한 것이다. 주요 기업들이 정부에 등 떠밀려 밸류업 계획에 동참하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투자자들은 기대보다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 이달 발표인데…밸류업 공시 상장사 ‘9곳’ 그쳐

 

한국거래소는 이달 내에 성장이 기대되는 상장사들을 선별해 지수로 나타내는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공개한다. 밸류업 지수 흥행을 위해 연내엔 이를 기반으로 한 상장지수펀드(ETF) 상품과 선물상품도 출시할 계획이다. 밸류업 지수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주주환원과 자본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달 밸류업 지수 발표를 앞두고 자발적으로 밸류업 공시에 나선 상장사는 극소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일 기준 기업가치 제고 계획과 관련해 공시한 기업은 32곳이다. 코스피·코스닥 시장 전체 상장사(2586곳)의 1.24%에 불과한 수치다. 이마저도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게 아니라 예고한 곳을 포함한 것이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실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계획을 윤곽이나마 발표한 상장사는 10곳에 그친다. 코스피시장에선 현대차와 미래에셋증권, DB하이텍, 신한지주, 우리금융지주, 메리츠금융지주, 콜마홀딩스 등이고, 코스닥시장에선 에스트래픽, 에프앤가이드 등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상장사 비율이 전체의 0.39%에 그치는 셈이다.

 

이번 밸류업 계획이 일본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했다는 점에서 지수에 편입될 상장사 수는 150개에 달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밸류업 지수에 편입될 상장사의 과반 이상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세우지 않고도 지수에 편입되는 것이다.

 

앞서 일본에선 기존 5개였던 증시를 프라임·스탠다드·그로스 등 3개 시장으로 통합한 뒤 프라임 시장 내 시가총액 상위 500개 상장사 중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150개 기업으로 구성된 JPX 프라임 150 지수를 출시했다.

 

덕분에 일본의 증시는 꾸준히 우상향하면서 버블경제 시절 찍었던 3만7000선까지 돌파했다. 일본 니케이 지수는 지난 7월 4만2000을 찍고 4일 기준 3만7047로 하락하긴 했지만 연초와 비교하면 무려 11.29% 올랐다. 일본이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가 부양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결과다.

 

반면 코스피지수는 4일 기준 2580.80으로 연초 대비 0.15% 하락했다. 2021년 초 3000을 돌파한 이후 오르나 싶었던 코스피 지수는 2022년 2000 초반까지 떨어진 이후 지금까지 2년 넘게 2000대에 머물고 있다. 정부가 밸류업 계획을 통해 주가 부양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자율성 강조한 韓 밸류업 계획…인센티브·기업가치 제고 실패 시 책임 ‘미미’

 

정부의 바람과 달리 자진해서 밸류업 공시한 상장사가 저조하다보니 투자자들 사이에선 향후 밸류업 지수가 발표된다해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주가 부양을 이끌 수 있을지 의구심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기업 경영진의 주가 부양 의지인데, 자발적으로 밸류업 공시에 나서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주가 부양 의지가 약하단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상장사 입장에선 밸류업 지수에 편입될 경우 얻게 될 유인이 불확실하단 게 저조한 참여율의 이유로 지목된다. 정부는 매년 밸류업 우수법인을 10곳 선정할 계획이다.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면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늘린 기업에는 5% 법인세 세액공제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 등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까지 인센티브가 구체화되진 않았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특히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만큼 당초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기업이 져야할 책임에 대해서도 불명확하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토대로 시장 및 투자자와 소통한다는 내용이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지만 핵심은 기업 자율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계량화된 수치를 목표로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곤 하지만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로 목표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 기존 목표의 수정과 보완도 가능하도록 했다. 계량화된 수치로 목표 설정이 어려울 경우 정성적인 서술로도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 문제는 계획이다보니 주가 부양을 위해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실현되지 않아도 별다른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통상 기업의 공시내용이 사실과 다를 땐 허위 공시 등에 따른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반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의 경우 예측에 대한 합리적 근거만 제시하면 공시 규정에 따른 불성실 공시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했다. 투자자를 위한 밸류업이 아니라 기업만을 위한 밸류업으로 전락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밸류업 계획을 온전히 기업의 자율에 맡기기보단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기업에 정량적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평가 항목을 의무적으로 마련하는 등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가 되려면 밸류업 지수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밸류업 지수가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며 “일본의 밸류업 사례에서 보듯 PBR 1배 미만 기업에 주가 부양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거나 영문보고서를 의무적으로 발행하도록 하는 등 시장 신뢰를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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