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줄고, 가격 올랐는데”…고강도 대출규제, 실수요자 곡소리
“매물 줄고, 가격 올랐는데”…고강도 대출규제, 실수요자 곡소리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가계부채를 관리하라는 압박을 받았던 은행권이 결국 고강도 대출규제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그간 대출금리를 올리거나 한도를 줄이는 등의 가계대출 억제책을 내놨던 것과 달리 이번엔 아예 다주택자가 아닌 주택을 한 채라도 보유할 경우 추가 대출 자체를 막는 초강수를 뒀다.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은행권이 강도 높은 대출규제를 쉴 새 없이 내놓으면서 이사철 주택 구입을 계획했던 무주택자는 물론 전세를 구하려는 실수요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매물까지 줄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까지 막히면 주거난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권 전방위 대출규제 신호탄…1주택자 추가 대출 원천봉쇄

 

금융당국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가 시행되면서 은행권에선 대출규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오는 9일부터 주택을 하나라도 소유하고 있을 경우 주택 매입을 목적으로 한 대출뿐 아니라 세대원 모두가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무주택자에게만 전세대출을 지원한다.

 

기존 40년이었던 주담대 최장 만기도 30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원리금 상환부담을 늘리는 것으로 사실상 대출 가능 한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 주택을 담보로 받는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도 기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하고 갭투자에 활용되는 전세대출도 제한한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다만 이사시기 불일치 등에 따른 기존 주택 처분 조건부 주담대는 허용한다. 또 전세대출의 경우 기존 전세를 연장하는 경우와 더불어, 부모 등 밑에 세대원으로 있다가 결혼 등의 사유로 세대 분리를 통해 ‘무주택 전세 세입자’가 되는 경우에는 예외다.

 

우리은행이 주택소유자에겐 추가대출을 원천차단하는 초강수를 둔 가운데 나머지 시중은행들도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말 이미 생활안정자금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했다. 주택담보로 생활안정자금대출을 받아 추가 주택을 사려는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주담대 대출만기도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했다.

 

신한은행 역시 3일부터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한 데 이어 주담대 만기를 기존 50년 이내에서 30년 이내로 줄였다. 하나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의 모기지보험 가입을 중단하고 두자택자 생활안정자금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했다. 대부분 은행들이 대출 한도와 기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권이 쉴 새 없이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 들어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부실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은행권을 향해 가계대출 증가세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시중은행이 대출금리를 인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하나·신한·우리·국민·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722조5285억 원에 달했다. 주택담보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대출 증가가 실수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투기 수요에 의한 것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괄적인 규제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강도 대출규제 실수요자 피해 양산 우려…집값 안정효과도 ‘글쎄’

 

문제는 은행권의 고강도 대출규제가 당장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아낼 순 있겠지만 이사철을 앞두고 이사나 주택 구입을 계획했던 실수요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굵직하 대출규제뿐 아니라 은행권에선 개별적으로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면서 기존보다 엄격한 잣대로 대출이 이뤄질 수 밖에 없어서다.

 

직장인 박태형 씨(43)는 “10월에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의 만기가 끝나서 이사를 해야 하는데 불과 몇 달전엔 나왔던 주다대 대출한도가 갑자기 줄어들었다”며 “주담대 한도가 줄어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전세를 다시 알아봐야 할 처지에 놓였는데, 전세값까지 오르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 이사철을 앞두고 쉴 새 없이 쏟아져나오는 고강도 대출규제로 인해 무주택 실소유자들의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피해를 호소하는 건 비단 박 씨뿐만이 아니다. 오는 10월이 임대차 대책이 나온 이후 4년째를 맞이하다보니 2+2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하려는 수요가 대거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전방위 대출 규제가 주택소유자뿐 아니라 무주택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은행권 규제가 가해지면 실수요자들의 대출 가능 총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1주택 갈아타기나 내 집 마련을 계획했던 무주택자들의 접근 가능한 주택 가격대도 자연스레 더 낮아질 것이다”고 밝혔다.

 

대출규제가 당장의 집값 상승세를 억제할 순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지 여부도 미지수다. 그간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이뤄질 때마다 단기적으론 집값이 내리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오르는 모습이 되풀이됐다. 정부가 대규모 주택공급에 나선다는 계획을 밝히긴 했지만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은행권 안팎에선 금융당국의 엇박자 행보를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앞서 가계대출 확대 우려가 제기된 상황에서 2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을 기존 7월에서 9월로 연기했을 뿐 아니라 정책자금대출은 공급을 오히려 늘렸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는데도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은행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집 값이 오르기 시작했던 연초까지만 해도 정부는 오히려 정책대출 공급을 늘리는 등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며 “2단계 스트레스 DSR도 기존 7월에 도입하기로 했다가 2달 연기하고, 공급을 늘리기로 하는 등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더니 갑자기 가계부채 관리하라며 조이기에 들어가니 어느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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