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취업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자녀의 취업 준비 기간도 길어진 탓이다. 부모 입장에선 생활비, 거주비, 교육비 등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평균 수명 증가로 본인 노후를 챙기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자식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 건강까지 해쳐가며 뒷바라지하는 부모들을 위해서라도 청년세대 스스로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냥 쉬는’ 청년 44만명 시대…자식 미래 위해 제 살 깎아 희생하는 부모들
29일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하반기 대졸 신규 채용 계획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10곳 중 6곳(57.5%)은 올해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신규채용을 하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늘리지 않겠다고 한 이유로는 수익성 악화·경영 불확실성 대응을 위한 긴축경영(23.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중견·중소기업도 채용 계획을 대폭 줄였다. HR 테크기업인 인크루트가 국내 기업 808곳을 대상으로 ‘하반기 국내 기업 채용 동향’을 조사한 결과 중견기업 중 채용 계획을 확정했다고 답한 곳은 50.4%로 전년 대비 4.0%p 감소했다. 중소기업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0.6%p 줄어든 47.4%만이 채용 계획을 확정했다고 답했다.
채용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취업 자체를 포기한 채 부모 경제력에 의존하는 청년들도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청년층(15~29세) 가운데 ‘쉬었음’ 인구는 44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보다 높은 수치이자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다.
‘쉬었음’은 취업·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음에도 근로활동을 하지 않고 막연히 놀고 있는 이들을 뜻한다. ‘쉬었음’ 청년의 다수는 향후에도 일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쉬었음 청년(44만3000명) 가운데 일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이들은 33만5000명에 달했다.
자녀 세대의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결국 포기하는 이들까지 속출하면서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세대로 전가되고 있다. 부모 입장에선 취업 준비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기 때문에 자식에게 아르바이트 등의 경제적 보조를 요구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대학 등록금에 취업 준비 비용까지 감당하려다 보니 정작 본인들의 노후 자금 계좌를 해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직장인 최정민 씨(54·남)는 “첫째가 올해 서른으로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이 넘었는데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다”며 “본인 눈높이는 높은데 채용 인원 자체가 적다보니 계속해서 취업 기간이 미뤄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취업 준비로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다 보니 월세, 생활비 등 매달 150만원 가량을 보내주고 있다”며 “최근 아내와 노후 준비로 모아놨던 적금 통장도 중도 해지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 대해 기업별 채용인원 축소와 함께 지원자들의 취업 눈높이가 높아진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보다 대학졸업자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눈이 높아졌고 결국 한정된 일자리에 많은 인원이 몰리면서 취업난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달 대졸(전문대 포함) 이상 ‘쉬었음’ 청년층 인구는 전년 동기 대비 19.8% 늘어난 반면, 고졸 이하는 4.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부진으로 인한 채용 규모 축소로 하반기 구직자들은 대기업 정규직만을 무조건적으로 고집하기보다는 인턴, 유관업무 경력 등 본인만의 차별화된 취업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고소득 일자리에 대한 기대치를 일시적으로 낮추는 등의 눈높이를 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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