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임용 2년 차 젊은 교사가 교실 안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 교사는 ‘연필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이 발생한 12일부터 교사가 목숨을 끊은 18일까지 수차례 전화 통화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연필 사건은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 오전 수업 중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자, 이 학생이 그만하라며 연필을 빼앗으려다 지신의 이마를 그어서 상처가 생긴 사건을 말한다.
사망한 교사의 동료 교원은 “알려주지도 않은 핸드폰의 번호를 학부모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해당 교사는 학기 초부터 문제행동 학생으로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었고, 학기 말 업무량이 많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에 교육부는 “연필 사건과 문제행동 학생을 포함해 총 10건의 민원이 있었고, 고인이 동료 교사와 교감에게 이야기해 도움을 받았다”며 “이 중 6건은 다른 부적응 학생들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사 인권에 대한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교육부는 교사 보호를 위해 학부모가 교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사전에 예약하지 않고서는 교사를 만날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서울 시내에 있는 일부 초등학교에 시범 도입했다.
시범학교 학부모가 교사 접견을 원한다면 카카오톡 채널로 교사와 사전에 약속해야 접견이 가능하며 또 다른 대책으로는 AI 챗봇을 활용해 불만 사항을 처리하고 학교 상담실에 녹음 장치를 설치하는 방안 등도 마련됐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 중인 장하림 씨(27·여)는 학부모 상담 예약 제도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장 씨는 “단순히 교권을 보장을 위해 제도 도입을 찬성하기 보다는 상담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제도라고 본다”고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장 씨의 말처럼 학부모 상담 사전 예약 제도가 도입되면 교사의 경우 학부모와의 상담을 위한 사전 준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학부모와 교사가 정해진 시간에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갑작스러운 방문과 같은 불편한 상황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 학부모가 교사를 만나기 위해 사전에 예약을 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Parents' Evening”이라는 정기적인 학부모 상담일이 있으며,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상담이지만 사전에 교사와 합의가 필요하다.
영미권 최대 커뮤니티인 레딧에서도 한국에서 시범 운영되는 면담 제도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레딧 이용객 LaZy_Blue는 “이 제도가 교사를 보호하는 것이 목표라는 건 알지만 제 나라에서는 부모를 포함한 모든 학교 방문객이 입장 시 서명하고 방문자 패스를 착용해야 한다”며 “모르는 사람이 학교에 방문하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다른 이용객 MyStateIsHotShit도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다닌 모든 학교에서 사전 예약제도가 있었다”며 “학교 직원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방문의 구체적인 목적을 인용한 통지문을 작성해야 했고, 교감 선생님의 허가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 운영을 부모가 악의적으로 방해할 경우 퇴학을 당할 수도 있다는 통지문에 서명해야 했다”며 한국 학교 운영과 다른 점을 알렸다.
명동에서 만난 칼 씨(52·남)는 “미국에는 담임선생님 제도가 없기 때문에 부모가 상담을 희망하는 교사가 있을 경우 사전에 전화나 메일로 약속을 하고 방문한다”며 “약속을 하지 않고 학교에 가는 부모들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고, 예의 없는 부모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부모가 갑자기 학교에 급하게 방문이 필요할 경우에는 해당 수업 중인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온다”며 “대부분의 발생한 사고는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학교에서도 학부모와 교사들의 면담은 사전 예약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알렉스 씨(40·남)는 “아이들의 문제로 담임선생님과 면담이 필요하다고 느낄 경우 사전에 전화나 메시지를 통해 사전에 약속을 잡은 뒤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며 “싱가포르에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굉장히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같은 동양권인 일본도 학부모가 학교에 방문하기 전에 사전에 담임교사와 약속을 한 뒤 방문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학교에 부모님이 방문할 경우 옷도 차려 입은 뒤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부모들은 담임선생님과 사전에 약속한 뒤 학교에 방문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는 양지희 씨(50·여)는 “아들의 성적이나 평소 태도 등을 내가 모르는 아들의 모습을 상담하고 싶을 때는 약속하고 방문하는 게 예의 있는 부모라는 생각이 들지만 갑자기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가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왔다는 라이안 씨(38·남)는 “대부분의 말레이시아 학교에는 정해진 면담 시기가 없다”며 “면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비공식적으로 면담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크게 면담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도 없는 것 같다”며 면담 자체의 필요성도 못 느끼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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