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을 둘러싼 코드기부 논란이 일고 있다. 임 회장 취임 후 우리금융 내 공익재단의 기부대상이 크게 바뀌었는데 그 중에는 특정 정치 성향에 가까운 공익재단(사회단체)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 회장은 현 정부 출범 초기 경제부총리 하마평에 올랐었고 회장 취임 초기엔 정권 낙하산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여론 안팎에선 전직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논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회장 중심의 절대권력 체제를 방증하는 또 다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장 선임과 동시에 자산규모 수백억대의 공익재단 이사장 자리까지 거머쥐는 관행이 이어지다 보니 사회공헌 활동마저 회장의 입맛대로 이뤄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리금융 주주들도 “민간기업이 특정 정치색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영업활동에 지장을 받을 만한 사안”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회장 서브타이틀 재단 이사장, 임종룡 취임 후 보수 성향 재단에 수십억대 기부금 쾌척
국세청, 우리금융그룹 등에 따르면 우리금융미래재단은 지난 2022년 우리금융그룹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초기 출연금은 200억원 규모이며 매 년 각 계열사가 별도로 영업이익의 일부를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각 계열사가 내는 기부금 총액은 연간 약 170억원 수준이다.
우리금융미래재단의 이사장직은 줄곧 그룹 회장이 맡아왔다. 손태승 전 회장이 설립과 동시에 이사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신임 회장인 임종룡 회장이 자리를 넘겨받았다. 그런데 이사장이 바뀐 지난해 우리금융미래재단의 행보도 크게 달라졌다. 우선 공익사업 지출 비용이 전년에 비해 급증했다. 지난해 공익사업 비용은 95억원 수준으로 설립 당해 연도인 2022년 38억원에 비해 2.5배 가량 늘었다. 기부금 총액이 늘면서 수혜 기관의 숫자도 증가했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기부금 수혜 기관이었다. 이사장이 바뀐 후 기부대상도 속칭 ‘물갈이’ 된 것이다. 지난해 우리금융미래재단이 기부금을 납부한 기관은 수십여곳에 달했지만 직전 해에 이어 2년 연속 기부금을 받은 곳은 단 5곳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전부 새로운 기관으로 채워졌다.
특히 새롭게 기부대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관 중에는 현 정부 또는 보수정치와 인연을 맺고 있는 곳들이 여럿 존재했다. 일례로 지난해 우리금융미래재단이 가장 많은 액수를 기부한 곳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였다. 총 3차례에 걸쳐 18억원을 기부했다. 직전 해에는 기부 명단에 없었다. 과거 우리은행 등 각 계열사가 직접 기부를 한 적은 있지만 재단까지 기부에 동참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현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김병준 회장이다. 지난해 1월 회장에 추대된 김 회장은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담아 온 정치인이다. 과거엔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하는 등 줄곧 진보진영에서 활약했으나 2016년 11월 박근혜정부 국무총리에 내정된 후부터 보수진영 인사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8년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회장이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20대 대선 때부터다. 김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고 당선인 시절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으로 임명된 바 있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는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도 2대 국무총리 유력 후보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정치권 밖에서도 김 회장을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앞서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삼성그룹의 한국경제인협회 회비 납부 여부를 두고 “아직도 정치인 출신, 그것도 최고 권력자와 가깝다고 그렇게 평가받고 있는 분이 경제단체 회장 직무대행을 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상할 뿐만 아니라 임기 후에도 계속 남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연 한경협이 정경유착 고리를 끊을 의지가 있는지 저는 회의를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이 최고 권력자와 가깝다고 지칭한 인물은 김 회장이다.
우리금융미래재단 기부명단에 등장한 ‘보수·MB정부·뉴라이트’ 관련 기관(단체) 눈길
2022년엔 기부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지난해엔 우리금융미래재단으로부터 7억500만원을 기부 받은 ‘(사)사랑의달팽이’도 보수진영과 비교적 가까운 기관으로 분류된다. 기관을 이끄는 수장인 김민자 이사장의 남편은 원로배우인 최불암 씨다. 최 씨는 일찌감치 보수 성향 연예인으로 분류돼 왔다. 과거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산하 ‘문화가 있는 삶’ 추진단에서 활동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활동을 벌였다.
최 씨 스스로도 뚜렷한 정치색을 나타내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과거 문재인정부 시절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려는 것인데 지금 시국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내 주위 사람들도 다들 불안해하지만 마음속 말을 바깥으로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정권 출범할 때만 해도 많이 기대했는데 문 대통령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어가는 지 잘 모르겠다”고 피력했다.
지난해 우리금융미래재단이 무려 10억원의 기부금을 쾌척한 밀알복지재단도 보수 정치색이 뚜렷한 공익재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올해로 13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는 홍정길 목사가 오랜 기간 수위 높은 발언으로 진보진영과 대립해 온 탓이다. 특히 지난 21대 선거를 앞두고는 “이번 4·15 선거는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라며 문재인정부를 맹비난해 진보성향 종교 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후에도 꾸준히 공식석상에서 개인적인 정치성향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종교계의 대표적인 보수 인사’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도 지난해 처음으로 우리금융미래재단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부금 액수는 1억9657만원이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김성이 이사장은 현장을 중시하는 사회복지 전문가로 익히 유명한 인물이다. 과거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에서 사회복지분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대선 승리에 일조했고 이명박정부 출범 후엔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맡은 이력도 지녔다.
우리금융미래재단은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실명예방재단에 2억8500만원을 기부했다. 기부를 받은 한국실명예방재단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강윤구 이사장이다. 강 이사장은 행정고시 16회로 공직에 입문해 노무현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출범 후 화려하게 공직에 복귀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등 보건·복지 분야의 굵직한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우리금융 회장 선임과 동시에 공익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는 구조와 해당 재단의 정치편향 기부 논란에 대해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금융소비자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익재단의 설립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다”며 “기부대상을 수시로 바꾸는 것은 취약·소외계층 지원이라는 취지와 맞지 않을뿐더러 공공 소유인 재단을 사유화하는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임종룡 회장 취임 이후 공익재단을 통해 친여권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들 중심으로 기부금을 늘린 건 추후 회장 연임을 위한 보험으로 비춰진다”며 “회장이 재단 이사장까지 겸임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이를 견제하는 장치가 없다는 게 문제다”고 꼬집었다.
일련의 논란과 관련, 우리금융그룹 관계자는 “기부대상의 경우 정해진 NGO 제안서를 제출 받은 후 일련의 절차를 거쳐 심사를 통해 선정된다”며 “기부대상 명단의 기관장과의 연관성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고 밝혔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