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폭등 돈줄은 꽁꽁…서민 수명 갉아먹는 주거불안 재앙 덮쳤다
전세는 폭등 돈줄은 꽁꽁…서민 수명 갉아먹는 주거불안 재앙 덮쳤다

집 걱정에 밤 잠 설치는 무주택 서민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임대료가 집값 보다 빠른 속도로 오르는데다 높은 대출 문턱에 가로 막혀 내 집 마련도 어려운 탓이다. 무주택 서민들은 솟아날 구멍 없는 하늘만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별도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해외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주거불안은 흡연·비만보다 수명 단축 효과가 더욱 크다.

 

전세값 폭등에 기존 세입자 ‘억지’ 계약해지 사례 속출…오갈 때 없는 서민들 발만 동동

 

서민의 ‘내 집 마련 사다리’로 불리는 전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은 3.72% 올랐다. 같은 기간 인천과 경기도 각각 2.61%, 1.85% 상승했다. 무주택자, 청년 직장인, 신혼부부 등의 수요가 많은 작은 면적일수록 전세 가격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졌다. 규모 별 전세 가격 상승폭은 △소형(전용 60㎡ 이하) 4.73% △중·소형(전용 60~85㎡) 3.89% △중형(전용 85~102㎡) 2.53% △중·대형(전용 102~135㎡) 2.11% △대형(전용 135㎡ 초과) 1.09% 등의 순이었다.

 

전세 가격 상승률은 매매가격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3.9%에 달했다. 표본 개편이 있었던 지난 2022년 11월(53.9%)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고 기록이다. 전세가율은 매매시세 대비 전세시세의 비중을 말한다. 높을수록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차이가 적다는 의미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아파트 전세시세는 3.79% 상승한 반면 매매가는 0.02% 오르는 데 그치면서 가격 차이가 크게 감소했다.

 

전세 가격이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불안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전셋집을 알아보는 이들은 물론 기존에 전셋집을 계약한 이들까지 전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안팎에선 전자의 경우는 전세 가격이 올랐으니 불안감도 커지는 게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상당히 의외이면서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가 많다.

 

▲ 서울 마포구 소재 한 부동산. [사진=뉴시스]

 

실제로 이미 계약을 맺고 전셋집에 살고 있는 이들은 당장은 기존에 계약한 집에서 거주하더라도 계약 종료 후 재계약 가능성이 희박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집주인들 입장에선 주변 전세시세를 의식해 어떻게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들어 계약 종료를 앞둔 집주인들의 주변 전세시세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이미 사용한 집주인은 물론 그렇지 않은 집주인들도 ‘직접 거주’를 이용해 신규 계약을 진행하려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선찬 씨(44·남·가명)는 “아직 계약기간이 6개월이나 남았는데 얼마 전 집주인이 병원을 다녀야 해서 직접 거주해야 한다며 계약종료에 맞춰 이사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주변 전세시세가 계약 때보다 20% 가까이 오르다 보니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기 위해 계약갱신청구권을 무력화시키는 이유를 댄 것 같은데 의심이 되도 확인할 길이 없다 보니 일단은 알았다고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문제는 주변 전셋집 시세가 전부 올라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돈으로는 같은 평수의 집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며 “빠듯한 생활에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은데 반전세로 알아보자니 부담이 크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자니 2년 만에 전학 가야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해서 마냥 고민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집 문제로 계속 신경을 쓰다 보니 요즘엔 밤잠을 설치는 날도 부쩍 늘었다”고 부연했다.

 

높아진 대출 문턱에 무주택자 내 집 마련 꿈 더 멀어져…“실수요 중심의 추가 대책 나와야”

 

무주택자들은 집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전세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매 가격이 높은데다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방침에 따라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는 물론 정책자금 대출 금리까지 줄줄이 오르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1일 주택도시기금의 디딤돌·버팀목 대출금리를 0.2∼0.4%p 인상하기로 했다. 디딤돌 대출금리는 기존 연 2.15~3.55%에서 2.35~3.95%로, 버팀목 대출금리는 기존 1.5~2.9%에서 1.7~3.3%로 각각 상향 조정된다.

 

▲ 서울 양평동 영등포 자이 디그니티 모델하우스. [사진=뉴시스]

 

시중은행들도 주담대 금리를 올리고 있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지난달 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금리를 올린 것도 모자라 인상까지 예고했다. 신한은행은 여섯 차례 금리를 올렸으며 국민·우리은행이 다섯 번씩 금리를 올렸다. 하나·농협은행은 두 번 금리를 상향했다. 금리 뿐 아니라 대출 문턱 자체를 높이는 조치도 예고했다. 일례로 신한은행은 내부 회의를 거쳐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26일부터 당분간 취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조건은 임대인(매수자) 소유권 이전,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주택 처분 등이다.

 

한국은행 또한 대놓고 가계대출을 이유로 지목하며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2일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3.50%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2월부터 13차례 연속 동결이자 역대 최장 기간 동결 결정이다. 이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도 “물가만 봐서는 금리 인하 요건이 조성됐다 본다”면서도 “금리 동결 이유는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증가 위험 신호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당수의 무주택자들이 높은 전세가격과 대출규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 상황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주거불안이 지속될 경우 좌절감과 상실감에 휩싸이는 것은 물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까지 악화된다는 것이 해외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며 “정부가 무주택자라는 것이 확인된 이들에게 만이라도 ‘대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주거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탈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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