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이 미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미루고 유럽 시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삼양과 오뚜기 등 경쟁업체가 선점한 미국보다 진출 속도가 느린 유럽 시장을 먼저 개척해 선점하겠단 전략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농심의 올해 2분기 매출은 2.8% 증가한 8607억원이다.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6% 감소한 436억원으로 나타났다. 해외법인 매출은 48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했다. 특히 미국 법인 매출이 308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줄었다.
다른 식품 기업들이 해외 수출을 통해 성장하는 시기에 농심 홀로 역성장한 것이다. 경쟁업체인 삼양식품과 오뚜기의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진출을 통해 크게 성장했다.
삼양식품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49.6% 증가한 1천695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 영업이익과 매출은 역대 최대로 2분기 연결 기준 삼양식품은 매출 4244억원, 영업이익 894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8.7%, 영업이익은 103.2% 증가한 수치다. 오뚜기 역시 상반기 영업이익 1천348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3.8% 증가했다.
삼양식품의 경우 해외 매출 부문이 실적을 견인했다. 삼양식품 2분기 해외 매출은 332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4.9% 증가했다. 역대 최초로 3천억원을 넘었다. 삼양식품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78%다. 특히 미국 법인 삼양아메리카는 현지 K-푸드 열풍과 불닭볶음면 인기 등에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125% 증가한 714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해외 매출 결과로 시총 순위도 뒤바뀌었다. 농심의 시가총액은 19일 종가 기준 2조4천513억삼양식품 3조9247억원으로 1조5000억원 가량 차이를 보였다.
농심은 1971년 미국에 처음 진출했으며 1994년 해외법인 농심 아메리카를 설립했다. 또 현지 공장을 두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삼양은 1972년 미국에 진출, 1980년에 삼양USA를 만들었다. 그러나 농심과 달리 현지 생산이 아닌 수출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K-푸드 열풍전에는 두 회사 모두 미국 진출에 큰 속도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시아 마트를 중심으로 재미교포 및 중국인들을 상대로 판매가 이뤄져 왔다. 그나마 농심이 판매에 열을 올리며 일부 미국 매장 아시안 코너에 신라면 정도를 유통했었다.
문제는 이러한 농심의 빠른 진출이 독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심 대표 라면인 ‘신라면’의 경우 불닭과 같이 매운 맛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너무 일찍 미국 매장에 진출해 불닭볶음면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다. 미국 현지 소비자 입장에서 농심 신라면은 아시안 코너 구석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특별하지 않은 제품이 된 것이다.
농심의 미국 매출이 감소하면서 기존 해외 전략도 변했다. 미국 제3공장 건립 계획을 미루고 대신 국내 수출 전용 공장을 세워 다른 국가를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신동원 농심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제3공장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대신 농심이 점찍은 시장은 유럽이다. 새로운 시장 개척을 통해 해외 매출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농심에 따르면 유럽 지역 매출액은 2022년 4830만달러(한화 약 644억원), 지난해 6010만달러(약 801억원)로 1년 만에 24.4% 성장했다. 유럽은 K-푸드 열풍이 불고 있지만 미국만큼은 아니다. 아직 유럽인들에게 K-푸드는 생소한 만큼 식품업계에게는 블루오션으로 여겨진다.
농심은 올해 유럽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6월 프랑스 대형 유통업체인 르끌레르와 까르푸에 주요 라면과 스낵 제품을 입점했고 파리에서 열린 ‘코리아 엑스포 2024’ 박람회와 ‘K-스트리트 페스티벌’에 모두 참가해 농심 테마 부스를 운영했다.
또 올림픽 기간에는 올림픽 주경기장과 올림픽 빌리지, 에펠탑 등 주요 거점에 위치한 까르푸 5개 매장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신라면, 짜파게티 등 주요 제품을 할인 판매하는 등 홍보에 총력전을 펼친 바 있다.
농심은 올해 하반기에 독일 리들(Lidl), 덴마크 샐링 그룹(Salling group) 등 현지 대형 유통업체에 신라면 등 주요 제품 입점을 확대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농심은 K-푸드 훈풍을 기대만큼 받지 못했고 신라면은 삼양의 불닭볶음면 시리즈에 가려졌다”며 “미국에 계속 매달리기보다 유럽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해외 매출을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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