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고대역폭메모리(HBM) 자립에 속도를 올리며 국내 기업들의 불확실성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규제에 맞서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 육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18일 세계 최대 특허관리 소프트웨어(SW) 기업 아나쿠아(Anaqua)와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 최대 D램 생산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최근 3년간 총 129건의 HBM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2022년 14건, 지난해 46건에 이어 올해 현재까지 69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의 인공지능 반도체 규제 강화에 따라 자립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중국은 고성능 HBM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SK하이닉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해외 매출은 28조8528억원으로 중국의 비중은 29,8%(8조6061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조8821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판매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삼성전자 또한 올해 상반기 HBM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이 HBM을 국가적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력과 생산력이 부족해 국내 기업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중국 반도체 업계는 아직 HBM 시장 성장에 수혜를 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중국 반도체 공급망은 여전히 고사양 메모리 제품을 생산하기 충분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또한 중국의 HBM이 당장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미칠 악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다만 중국의 HBM 기술력이 국내 기업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파이를 잡아먹을 수 있어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창신메모리는 기술력은 2세대 HBM까지 쫓아온 상태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만약 엔비디아가 창신메모리 HBM을 쓰겠다고 하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서 당장 국내 메모리 기업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애플이 양쯔메모리의 낸드플래시 128단을 적용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자마자 미국 정가에서 이를 막았다”며 “만약 아이폰에 양쯔메모리의 제품이 들어갔다면 국내 기업 한두 곳에는 큰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당장 국내 HBM 기업에 위협이 되는 국가는 중국보다 미국이란 주장도 나온다. 만약 미국이 중국에 대한 인공지능 규제를 강화한다면 이는 국내 기업 타격으로 직결될 수 있다. 가령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 제품에 대한 중국 수출을 금지한다면 국내 기업의 HBM 물량은 간접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르면 다음 달 대중 HBM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1일 미국이 이르면 다음 달 말 미국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대중국 반도체 추가 통제 조치를 공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적용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대중 수출을 막을 것이라 분석했다. FDPR은 미국의 기술을 조금이라도 사용한 외국산 제품에 대한 통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는 규제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모두 반도체 제작 과정에서 미국산 설계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이를 피해 가기 어렵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연구부원장은 “미국이 중저가 칩까지 제재에 나선다고 하면 삼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엔비디아에 수출을 하는 SK하이닉스 역시 영향을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또한 “중국에서 AI서버를 구축하면 한국산 HBM을 적용할 수 있는데, 미국이 이 부분까지 규제한다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인공지능 갈등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피해로 연결되지 않게 정부와 당국의 대처가 절실하다고 제언한다. 이 연구 부위원장은 “미국-중국간 무역정책에서 너무 많은 변수를 두고 있어 국내 기업들이 이에 대한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민간 기업에만 협상을 맡길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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