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보기 부끄럽다” 막말·비방·왜곡 얼룩진 민주주의의 꽃
“아이들 보기 부끄럽다” 막말·비방·왜곡 얼룩진 민주주의의 꽃

“요즘 한 가닥 하는 정치인들이나 극렬 지지자들 하는 행태를 보면 정말 아이들 보기 민망한 수준이에요. 아이들에게 ‘국민의 소중한 주권 행사인 선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이게 맞나 싶네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총선)를 앞두고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일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주요 정당의 핵심 인사들은 상대 정당이나 후보를 향해 언어폭력이나 다름없는 막말을 쏟아내는가 하면 일부 특정 정당의 극렬 지지자들은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무분별한 의혹제기를 일삼고 있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자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가 아이들 보기 부끄러운 수준으로 ‘저급화’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막말 싸움 번지는 선거전…여성비하·역사왜곡 모자라 “집에서 쉬어” 선거만류까지

 

오는 10일 치러지는 총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역대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5~6일 실시된 사전투표 참여율은 31.3%로 역대 선거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1대 총선(26.7%)에 비해 4.6p 높은 수준이다. 높은 사전투표율에 여·야는 각자 입맛에 맞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극심한 피로감에 빨리 해치워 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사전투표에 참여한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막말과 황당함을 넘어 안타까움까지 자아내는 허무맹랑한 의혹제기 등이 높은 피로감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주요 정당의 핵심 인사들을 비롯해 일부 지역구 후보들은 상대 당이나 주요 인사에 대한 발언의 수위를 높여가더니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자 아예 ‘막말’ 수준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 아빠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한 아이의 모습. [사진=뉴시스]

 

정치권 등에 따르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14일 오후 세종을 방문해 “살만하다 싶다면 2번을 찍든지 집에서 쉬어라”고 말해 여권 지지자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또 한강벨트의 격전지 중 한 곳인 동작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를 향해 일본어로 ‘냄비’를 뜻하는 ‘나베’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같은 당의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수원정 후보 역시 과거 출간한 책의 내용이나 발언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논란의 발언으로는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이 미 군정 시기 이화여대 학생들을 미 장교에게 성 상납시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정신대 종군 위안부를 상대로 섹스를 했을 것” “유치원의 뿌리가 친일의 역사에서 시작됐을 것” 등이 있다.

 

야권의 비례정당인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아예 대놓고 선거 구호를 “3년은 너무 길다”로 정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헌법과 법률 위반 직무 행위가 없는데도 “윤 대통령 레임덕, 나아가 데드덕을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조 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회연대임금제’를 실현하겠다”고도 밝혔는데 이를 두고 직장인들 사이에선 ‘사회주의 발상’이라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여권에서도 ‘막말 퍼레이드’에 동참하는 속속 인물들이 등장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야당 후보들을 겨냥해 “정치를 x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 “쓰레기 같은 극단주의자” “구질구질하고 지질하다” 등의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윤영석 경남 양산갑 국민의힘 후보는 선거 유세 도중 “문재인 죽여”라고 발언한 모습이 한 유튜버의 영상에 찍혀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민주당은 윤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언어폭력 수준의 막말과 무차별 의혹제기에 지친 시민들 “아이들 보기 부끄럽다”

 

▲ 공약 대신 상대 당에 대한 비방 발언 일색인 선거 현수막. [사진=뉴시스]

 

주요 정당 극렬 지지자들의 무분별한 의혹제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부 극렬 보수 지지자들의 부정선거 의혹제기가 꼽힌다. 앞서 사전투표를 앞두고 4·10 총선 투표소 수십 곳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40대 유튜버가 경찰에 적발돼 결국 검찰에 넘겨졌다. 해당 유튜버는 과거부터 끊임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던 인물로 알려졌으며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사전투표소에 카메라를 설치해 내부를 촬영한 정황도 포착됐다.

 

역대급 투표율로 마감된 사전투표 이후에는 부정선거 의혹제기가 더욱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서 온라인상에서 ‘은평구선관위에서 새벽 시간에 봉인된 투표함을 뜯고 불법적으로 투표지를 투입했다’는 주장과 함께 관련 영상이 확산돼 선관위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해명하는 일이 있었다. 김민석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총선상황실장의 사전투표율 예상치가 실제 투표율과 맞아떨어졌다는 점을 들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4·10총선을 선거를 앞두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막말과 무분별한 의혹제기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 보기 부끄럽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양승원 씨(41·남·가명)는 “이번 선거는 유독 시끄러운 것 같다”며 “예전에는 상대를 비판을 하더라도 공약이나 이런 걸로 싸웠는데 이번 선거는 건전한 경쟁 자체가 사라진 모습이다”고 혀를 내둘렀다.

 

충남 천안시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김나연 씨(38·여·가명)는 “선거철을 앞두고 아이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선거의 의미나 선거의 중요성 등을 가르치는 수업이 많아졌는데 정치인의 막말 관련 뉴스를 보면 아이들이 아예 선거를 모르는 게 낫다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며 “아이들이 빨리 커서 선거를 하고 싶다고 말할 때 얼굴이 화끈 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요즘 뉴스나 유튜브에서 오가는 정치관련 과격한 발언들이 청소년이나 미래 유권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뉴스나 신문을 보는 아이들 자체도 갈수록 줄어가고 있어 걱정되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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