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도 못 피해간 문과 소외…반수·전과 노리는 이과생만 가득
SKY도 못 피해간 문과 소외…반수·전과 노리는 이과생만 가득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현실은 인문학 공부의 출발인 대학입시에서부터 문과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과생들의 무분별한 ‘문과침공’으로 문과 경쟁률이 실제에 비해 과도하게 높아진 게 원인이라며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현행 입시 제도의 수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교육업체 유웨이에 따르면 2024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상위권 주요 대학 24개 인문계열 지원자는 일반전형 기준 5만6905명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262명 늘어난 규모다. 올해 수능을 치른 문과생 응시자가 1만명 넘게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문과 수험생은 크게 줄었지만 인문계열 대학 지원자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이과생들이 높은 표준점수를 바탕으로 인문대에 교차 지원하는 이른바 ‘문과침공’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수학 선택 과목 중 주로 이과생들이 응시하는 미적분 표준점수 최고점은 148점인 반면 대다수 문과생들이 선택하는 확률과 통계는 137점이다. 0.1점으로 대입이 결정되는 현행 입시에서 11점 차이는 ‘압도적’ 수준으로 평가된다. 상대적으로 문과를 선택한 학생들은 입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과생이 ‘간판’ 따기 유리한 입시제도…문과 버리고 이과로 몰리는 고교생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교차지원은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의 넓혀 학문의 범위를 확장시켜 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구조적으로 입시에서 문과가 분리한 경우엔 학생들이 문과 자체를 선택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 인문·사회 계열 정시 최초 합격자 중 이과생 비율은 51.6%로 절반을 넘게 차지했다. 심지어 경영·경제학부 합격자 중 이과생은 ‘3분의 2’ 수준에 달했다.

 

▲ 서울의 한 학원에서 개최한 의대 증원에 따른 입시 판도 분석 설명회 현장. [사진=뉴시스]

 

현행 입시는 중앙대학교 이공계열 합격자가 고려대학교 인문계열에 합격할 수 있을 만큼 이과생에게 유리한 구조다. 문과로 교차지원 해 점수가 높은 학교에 일단 입학만 한 후 이공계로 전과하거나 반수를 준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작 일찌감치 해당 대학 학과 진학을 원했던 문과생들은 점수가 낮은 대학에 입학하거나 재수학원으로 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양대학교에 재학 중인 조성욱 씨(20·남)는 “저는 옛날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본교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동기들을 보면 대부분 이과생으로 학과 공부 보단 수능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문과생들은 문과라는 이유만으로 원하는 학과에 가지 못하게 돼 본의 아니게 재수를 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소연했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김신우 씨(37·남)는 “교차지원은 선택형 수능이 낳은 구조적인 문제다”며 “교차지원으로 학교 레벨을 1~2단계 높인 이과생들은 복수전공·전과·반수 등을 통해 결국 이공계로 돌아가고 실제 문과 공부를 원했던 학생들도 일찌감치 이과로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정부 지원에서도 문과 홀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인문사회의 학술 연구에 대한 지원은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1% 남짓에 불과하다. 또 경제‧인문사회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올해 예산안은 전년 대비 16.4% 삭감됐다. 대학 차원에서 해당 연구에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애플의 아버지 스티브잡스 “소크라테스와 하루만 같이 보낸다면 애플 기술 다 내놓겠다”

 

▲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전경. ⓒ르데스크

 

다수의 전문가들은 기술이 발달하고 고도화 될수록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만큼 문과에 불리하게 설정된 입시제도 수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애플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나는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며 기술이 효과를 내기 위해선 인문학이 근간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역시 “휴머니즘을 공부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으로 인문학을 경시하는 것은 휴머니즘의 붕괴와 같다”며 “기술 발전의 방향을 알려주는 인문학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찬규 인문콘텐츠연구소 소장은 “우리 사회는 공부를 잘하면 무조건 의대에 가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그러나 창조력과 창의력은 문화의 유연성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반드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행복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는 “인문사회학에 관심이 없는 5년이 또 지속되면, 이 나라 인문사회학은 정말 그냥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인문사회 분야의 공적지원을 정상화할 제도적 뒷받침과 더불어 문과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한 입시 제도의 대대적 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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