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만 노리는 ‘악질 고리채’ 배경엔 벌금·집행유예 솜방망이
약자만 노리는 ‘악질 고리채’ 배경엔 벌금·집행유예 솜방망이

 

▲ 최근 청년, 청소년 등 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금융에 대한 처벌 기준 상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약한 처벌이 불법 사금융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불법사금융 전단지. [사진=뉴시스]

 

최근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청년이나 청소년, 사회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한 불법 대부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제적 약자들이 대출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급전을 빌려준 뒤 엄청난 이자를 받아 챙기는 수법을 쓰고 있다. 엄청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겐 협박과 갈취도 서슴지 않는 게 기본이다. 최근에는 돈을 빌리게끔 만드는 수법도 점차 다양화·지능화되고 있어 피해자 또한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금융에 대한 처벌 기준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수사당국에 검거된 범인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심지어 대법원이 처벌 수위가 약하다며 2심 판결을 파기한 사례도 있었다. 불법 대부업은 약자만을 노리는데다 피해자에게 절망에 가까운 고통까지 안긴다는 점에서 비윤리적 악질 범죄로 분류된다.

 

소액 빌려주고 상상초월 이자납부 협박…경제적 약자만 노리는 불법 사금융 기승

 

최근 청년, 청소년 등 시중 은행 대출이 어려운 경제적 약자를 노린 고금리 불법대출이 성행하고 있다. 소액을 빌려준 뒤 상상을 초월하는 고금리를 부여해 거액을 갈취하다시피 하거나 게임아이템을 대신 사준 뒤 나중에 원금과 고액의 수고비를 받아 챙기는 식이다.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지각비’ 명목의 돈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했다. 사실상 이자를 챙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챙기는 지각비를 금리로 따지면 수백·수천%에 달했다.

 

 

▲ 최근 청년, 청소년 등 시중 은행 대출이 어려운 경제적 약자를 노린 고금리 불법대출이 성행하고 있다. 소액을 빌려준 뒤 상상을 초월하는 고금리를 부여해 거액을 갈취하다시피 하거나 게임아이템을 대신 사준 뒤 나중에 원금과 고액의 수고비를 받아 챙기는 식이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불법사금융 근절 대책 간담회. [사진=뉴시스]

 

지자체와 경찰, 국세청 등은 대대적으로 불법 사금융 척결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공정거래종합상담센터’를 통해 피해자 구제를 돕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1~10월 중 대부업과 관련한 피해사례가 253건이나 접수됐다. 이 중 ‘고금리 소액대출 상담’이 142건(56.1%)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 채권추심’도 31건(12.3%)에 달했다. 상담센터에 신고한 피해자 중에는 10대 청소년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대부분 게임 아이템이나 아이돌 상품 등을 대신 구매해준다는 말에 현혹돼 빚을 지게 된 경우였다.

 

국세청도 칼을 빼 들었다. 지난달 30일 국세청은 취업준비생, 주부 등 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고금리 사채를 빌려주고 불법 추심을 시도한 사채업자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번에 조사 대상에 오른 사채업자는 전국적으로 총 163명이다. 이들 중에는 수천%에 달하는 고금리 사채를 빌려주고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나체 사진을 유포한다고 협박까지 하며 불법 추심을 벌인 일당도 포함돼 있다.

 

또 노숙자 명의로 위장업체를 만들어 서민·소상공인에게 카드깡 대출을 해 준 뒤 카드 매출채권 담보로 금융기관과 신탁을 체결해 대부수입의 자금세탁 방법을 사용한 정황도 포착했다. 폰지(다단계) 사기꾼에게 운영자금을 대여해 주거나 비상장주식을 거래하는 것으로 위장해 세금을 축소한 사채업자도 있었다.

 

지난해 경찰도 서민·소상공인 등을 상대로 한 민생침해 금융범죄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여 총 4690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118명을 구속한 바 있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범인 중에는 불법사금융 범죄자가 2085명으로 가장 많았다. 검거된 이들 중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불법사금융 범죄자 대부분은 생활자금이 부족한데도 고금리로 인해 시중은행을 찾기 어려운 경제적 취약계층을 노렸다.

 

“불법 사금융 판치는 이유 있었네”…사람 인생 송두리째 망쳐도 벌금·집행유예

 

 

▲ 국세청은 취업준비생, 주부 등 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고금리 사채를 빌려주고 불법 추심을 시도한 사채업자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번에 조사 대상에 오른 사채업자는 전국적으로 총 163명이다. 사진은 불법사금융 관련 인물에 대한 세무조사 계획을 밝히는 국세청 관계자의 모습. [사진=뉴시스]

 

주목되는 사실은 지자체, 경찰, 국세청 등이 불법 사금융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척결 의지를 불태우는 것과 별개로 재판에 넘어간 범인들에 대한 처벌 판결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약자에게 경제적 피해는 물론 신체·정신적 피해까지 입혀가며 제 배만 불리다 붙잡혀도 가벼운 처벌만을 받고 곧장 풀려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불법 사금융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지난 2019년 김진태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 위반 사건 선고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 간(2012년~2016년 6월) 대부업법을 위반한 사범은 총 4624명 중 실형을 선고 받은 인원은 171명에 불과했다. 비율로 따지면 3.6% 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업법 위반자들은 대부분 벌금형을 받았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인원은 전체의 52%인 2398명에 달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인원도 28.6%인 1323명이나 됐다.

 

얼마 전에도 살인적인 고금리와 불법 채권추심을 일삼다 적발된 일당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3단독 정지원 판사는 범죄단체 가입·활동 등의 혐의로 기소된 A(23·여)씨와 B(23·여)씨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한 각각 240시간과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하고 8325만원, 4160만원을 추징했다.

 

검찰에 따르면 피의자 두 사람은 최대 5000%가 넘는 고금리 이자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조직원들과 공모한 채권추심 과정에서 A씨는 337차례, B씨는 306차례에 걸쳐 채무자를 협박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20만원을 대출해준 뒤 일주일 뒤 38만원 상환하는 방식의 소액, 단기 대출을 해주면서 5000% 이상의 고리를 책정해 30억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추산됐다.

 

 

▲ 지난달 24일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대부업체 대표 A씨(30)에게 내려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담당 법원에 환송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4억9747만원 추징금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선 추징금 명령을 받지 않았다. 대법원은 추징금을 선고하지 않은 2심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사진=뉴시스]

 

재판부는 “불법 채권추심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결성된 범죄단체에 가입·활동하면서 조직원들과 공모해 각 범행을 저질렀다”며 “A씨는 총책의 배우자로서 이익을 공유한 것으로 보이고, B씨는 실무자에서 출발해 부장으로 승진하는 등 관리자 역할을 한 점 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들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총책의 통제하에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으면서 배정된 업무를 수행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불법 사금융에 대한 솜방망이 수준의 판결에 대법원이 제동을 건 사례도 있었다. 지난달 24일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대부업체 대표 A씨(30)에게 내려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담당 법원에 환송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4억9747만원 추징금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선 추징금 명령을 받지 않았다. 대법원은 추징금을 선고하지 않은 2심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미등록대부업자인 A씨가 법정이자율을 초과해 받은 1억8747만원의 이자는 피고인의 법정이자율 초과 수취로 인한 대부업법 위반죄로 인해 취득한 재산이다”며 “구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정한 ‘범죄행위에 의해 생긴 재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는 구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른 추징 대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정이자율 초과 이자 상당 이익이 피고인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추징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 원심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사기 사건 전문 변호사는 “최근 SNS, 커뮤티니 등을 통해 불법 사금융 관련 광고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피해자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며 “불법 사금융은 피해자가 대부분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이고 경제적 피해 뿐 아니라 신체·정신적 피해까지 유발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악질적인 범죄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관계기관이나 수사기관 등에선 관련 범죄 예방과 단속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법원 판결에서 비교적 가벼운 형벌만이 내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며 “이는 불법 사금융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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